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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유상철 감독, 꼭 병마와 싸워서 이겨달라” 응원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경신고 후배인 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향해 “꼭 의지를 갖고 싸워서 힘을 내주기 바란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박 감독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베트남 축구협회(VFF) 사무실에서 한국 언론사 기자들과 만나 유 감독의 췌장암 투병 사실 소식에 대해 “유 감독이 고등학교 후배고, 2002년에 같이 생활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타국에서 유 감독의 소식을 전해들은 박 감독은 이날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오래전에 조금 상황이 안 좋다고만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는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어 박 감독은 “(유 감독의 췌장암 투병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한국에 와서 홍명보 전무에게 전화하니 ‘내일 병원을 옮긴다. 상황이 안 좋다. 췌장암인 것 같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유 감독이) 너무 안됐다.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며 “나도 그럴 수 있고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너무나 안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동남아시아(SEA) 게임 후 한국에 전지훈련 가면 꼭 찾아보고 싶다”며 유 감독에게 “꼭 싸워서 힘내주길 바란다. 나보다 먼저 가선 안 된다. 내가 도울 일을 돕겠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유 감독은 인천 구단을 통해 “지난 10월 중순 몸에 황달 증상이 나타나는 등 이상 징후가 발생했고 곧바로 병원을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검사 결과 췌장암 4기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 감독은 “축구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우리 인천의 올 시즌 K리그1 잔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팬 여러분께서 끝까지 우리 인천을 믿고 응원해주시듯이 저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티겠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병마와 싸워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2019.11.22 08:28
야구

[인터뷰]'기록의 사나이' 이진영 "가장 큰 즐거움은 KT의 성장"

질문은 대기록을 세운 소회였다. 답변은 거듭 소속팀을 향한 애정으로 귀결됐다. 데뷔 20년 차 베테랑 이진영(38·KT)은 그저 팀만 생각한다. 이진영은 6월 30일 수원 NC전에서 대기록을 세웠다. 0-0이던 5회말 무사 2루에서 상대 선발투수 이재학으로부터 우중간에 떨어지는 2루타를 치며 통산 3000루타를 넘어섰다. 역대 13번째 기록이다. 지난해 6월에는 통산 2000경기 출장-2000안타를 세웠다. 리그 역사를 대표하는 타격 장인으로 인정받았다. 영욕이 교차하는 길을 걸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보여준 활약 덕분에 '국민 우익수'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SK 소속으로 우승 트로피도 들어올렸다. 퇴물 취급도 받았다. 2015년 11월 진행된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보호선수 명단(40인)에서 제외됐고, KT로 이적해야 했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 탓에 출전 기회도 점차 줄었다. 그렇게 프로 무대에서 스무 번째 시즌을 맞았다. 버텨탰고 대기록이 따라왔다. 이진영은 기록 달성에 담담하다. 그저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말만 거듭 강조했다. 의미 있는 숫자가 후배들에게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KT가 좋은 팀으로 성장하는데 모든 기운을 쏟고 있다. "나도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말이다. - 역대 13번째로 3000루타를 달성한 선수가 됐다. "오랜 시간 동안 야구를 한 덕분에 따라온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팀 승리에 기여하는 안타로 해내서 더 기뻤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럽다. 안타, 홈런이 망라된 누적 기록이다.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힘에 부칠 때도 있었다. 선수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덕분이다.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하다. 건강한 몸을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하다." - 기록을 의식했나. "물론 기록에 다가선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 같은 자세로 나섰다. 후속 타순에 황재균과 박경수가 있었다. 팀 배팅을 염두에 뒀다. 결과적으로는 안타가 나왔지만 기록 달성을 염두에 둔 타격은 아니었다." - 무사 2루였다. 공격적인 타격이 문제되지 않는 상황이다. "어느 순간부터 개인보다 팀이 먼저라는 생각이 커졌다. 의미 있는 기록을 앞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한준, 박기혁, 박경수 등 모든 베테랑이 팀이 이기는데만 집중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같은 생각이다. 경험이 많은 선수가 미치는 영향은 비단 출전 여부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귀감이 될 수 있는지를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다. 팀 성적이 안 좋을 때는 더욱 그렇다." - 지난해는 2000경기 출전과 2000안타 달성을 해냈다. 행보 자체가 후배들에 귀감이 된다. "나도 좋은 선배들과 함께 야구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대기록이 나오면 존경심도 생겼다. '좋은 선수가 돼서 후배들에게 내가 느낀 기운을 주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됐다. KT에는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선수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선수로 성장하도록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 프로 무대에서만 20번째 시즌이다. 이진영에게 타격이란. "비슷한 연차가 쌓인 선수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쉽고 재미가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항상 어렵다. 가장 어려운 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는 것이다. 투수의 보직과 유형이 다양해졌고, 전력 분석도 내가 신인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다. 외인 투수의 수준뿐 아니라 국내 투수도 발전했다. 구속도 빨라지고 변화구도 다양하다. 모든 변수에 맞춰서 내 타격, 내 야구를 지켜내는 건 너무 어려웠다." - 타격자세가 정석은 아니다. 콘택트 능력은 뛰어나다. 비결이 있나.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았다. '어떻게 저런 스윙으로 타격을 할까'라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라운드 위에서 결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폼이 정석이 아니라고 해서 틀린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준비 과정이다. 3~4년 차에 확실한 지향점을 정립했다. 나도 아마추어 때는 4번 타자로도 나섰다. 그러나 프로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콘택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배트 중심에 맞추는 방법만 고민했고, 현재 타격자세가 만들어졌다. 스텝을 밟지 않는 스윙이 대표적이다. 배팅 훈련 때도 멀리 치려 하지 않는다.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가운데로 뻗도록 집중한다." - 장타력 향상을 지향점으로 삼는 젊은 선수가 많다."대체로 홈런도 많이 치면서 3할 타율도 해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타자는 많지 않다. 스스로 방향을 정할 만큼 경험이 쌓여야 한다. 자기 장점을 찾지 못하거나, 지향점을 정하지 못한 후배들은 대체로 성장이 더뎠다. 고참급이지만 기술 조언은 해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코치님들이 계시다. 그저 더그아웃과 클럽하우스에서 수 싸움, 마인드 컨트롤에 대해 얘기해준다. 솔직히 교과서 같은 타격 자세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연습 때 어떻게 배트 중심에 공을 맞출 것인지 고민하라'는 말은 빼놓지 않고 해준다."- 통산 '최다 출장' 보유자 정성훈은 벤치 멤버가 되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자세가 생겼다고 했다. "내가 (정)성훈이 보다 먼저 팀을 옮기지 않았나. 출전 기회도 전성기보다 크게 줄은 게 사실이다. 모두가 마찬가지 아닐까. 당황스럽고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감독, 코치님이 잘 봐주셔서 선배들이 지키던 자리에 나설 수 있었다. 선배들을 실력으로 압도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후배라면 당연히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팀에도 도움이 된다. 젊은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으면 팀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선배들과 경쟁하는 구도가 많은 팀이 건강한 것이다. 물론 경쟁할 수준의 실력을 갖추지 못한 선수가 자리하면 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선수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 20년 차 이진영에게 즐거움이 있다면. "KT는 약팀으로 평가된다. 악착같이 잡고 가려는 상대 팀도 많다. 우리는 약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고 경기가 거듭되면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다. 꼴찌가 1위를 이길 수 있는 게 야구다. 강팀을 이기면서 팀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가장 즐겁다." - 유독 베테랑의 역할과 팀의 승리를 많이 강조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됐다. LG에 있을 때는 내가 잘해야 팀 안에서 영향력을 높일 수 있었다. 현재 KT는 특정 선수의 실력만으로 이길 수 있는 팀이 아니다. 그래서 개인의 영향력보다 다수의 조화가 필요하다. 팀워크가 강한 팀이 돼야 강팀에 맞설 수 있으며 조금이라도 경험이 많은 내가 그런 팀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일 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젊은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다. 이 선수들의 성장을 보는 것도 내 즐거운이다." - 팀 애착도 크다. "팀과 선수도 궁합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선수도 힘이 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KT에서 내가 갖고 있는 역량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내 자존감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어려운 후배들도 있겠지만, 예전처럼 경직된 문화도 아니다.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고민하는 후배도 있다." - 자극제는 있나. "나이가 아닐까. 선배들 가운데는 나보다 오래 뛴 선수도 많다. 아직 소외될 나이는 아닌 것 같고, 경쟁력도 있다고 본다. 베테랑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려니 한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출전하게 되면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한다. 나를 압도하는 후배가 나오면 당연히 자리를 내줘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tbc.co.kr 2018.07.06 05:59
야구

'귀국' 오승환 "팬들께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

'금의환향(錦衣還鄕 )'은 없었다. 메이저리거가 돼 돌아왔지만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은 무표정이었다. 해외 도박 파문을 의식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의 귀국 첫 마디는 "죄송하다"였다. 세인트루이스와 계약을 맺은 오승환이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계약 기간 1+1년, 최대 1100만 달러(약132억7000만원)를 받게 된다. 팀은 물론 리그 전체로 불펜 투수 중에서도 좋은 대우다. 그만큼 기대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현지 언론은 "오승환이 마무리 투수 트레버 로젠탈 앞에서 8회를 막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고 전망했다. 좋은 소식을 전했지만 웃지 못했다. 해외도박으로 자신의 야구 인생에 오점을 남겼다. 그리고 귀국 후 나선 공식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팬들에게 사과를 건넸다. 오승환은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먼저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린다. 물의를 일으켜 진심으로 죄송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야구장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잘못된 발언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오승환은 지난 12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 입단 기자회견에서 현지 취재진에 "(도박 스캔들 때문에 메이저리그로 온 건) 절대 아니다"며 "큰 사건이 될지 몰랐고, 불법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사과나 반성이 엿보이지 않는 이 발언은 다시 한 번 논란이 됐다. 오승환은 이 발언에 대해서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다. 공식 사과가 늦은 점에 대해서도 "100% 내 잘못이다"며 고개를 숙였다. 구체적인 목표, 새 팀에서의 보직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꼭 "야구장에서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도전을 향한 설렘과 포부가 왜 없을까. 그러나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다. 오승환은 "팀에 좋은 마무리 투수가 있다. 보직은 스프링캠프에서 정해질 것 같다. 성적 부담은 없다. 그저 한 시즌 맡은 보직을 이탈하지 않고 해내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유의 승부사 기질은 주저함 속에서도 새어 나왔다. 한 통계사이트가 예상한 3점 대 평균자책점에 대해서는 "만족할 수 없는 성적이다"며 "그저 전망일뿐이라고 생각한다. 더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팀에 입단했기 때문에 내 몫을 다해 월드시리즈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들과의 대결에 대해서는 초연했다. 같은 지구 피츠버그 소속의 강정호에 대해서는 "KBO리그 시절 맞붙어봤지만 일본으로 건너간 사이 기량이 좋아졌을 것이다. 상황에 맞춰 상대하겠다"고 했다. 류현진(LA다저스)에게는 "먼저 경험한 선배고 나보다 뛰어난 투수인 만큼 경쟁보다 조언을 많이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승환은 30대 중반에 다가선 나이에 대해 "나이 때문에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다. 지난해보다 몸상태가 훨씬 좋다"며 우려를 일축시켰다. 구종 추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떨어지는 공 구사 비율을 높일 생각일 뿐이다. 그는 "지금까지 해오던대로 한다"고 다시 강조했다.향후 오승환은 취업 비자가 발급되는 대로 팀의 전지훈련지인 플로리다로 건너갈 계획이다. 그는 마지막 인사에서도 "야구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사죄하겠다"며 거듭 사과를 전했다. 인천공항=안희수 기자 2016.01.13 18:26
축구

[서동현-하태균 인터뷰] 투톱의 재회..“형, 상무에서 같이 뛰자”

서동현(28·제주 유나이티드)은 오랜만에 보는 하태균(26·상주 상무)을 보고 두 번 웃었다. 처음엔 짧은 머리를 보고, 두 번째는 말끝마다 “~습니다”로 끝나는 어투를 보면서 한참을 놀렸다. 하태균은 “말투가 안 고쳐 진다”며 멋 쩍어 했다. 영혼의 투톱이 다시 만났다. 수원 삼성 시절 국내 센터포워드의 희망으로 떠오른 두 사람은 이제 한 사람은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또 한 사람은 군인 신분으로 재회했다. 23일 저녁 훈련소에서 막 퇴소한 하태균은 그 날 밤으로 상주 상무의 전지훈련지인 제주에 합류했다.포지션이 겹치는 두 사람은 188cm, 키도 똑 같다. 차범근 전 수원 감독 아래 2007년부터 4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좋은 시절도 힘든 시절도 수원에서 함께 겪었다. “형이 그 때 내 골 뺏어갔잖아. 형이 발만 안 댔어도 그냥 골이었는데.” 하태균의 타박에 서동현은 “골을 뺏으려던 게 아니었다”며 항변했다. 다시 만나 티격태격 하던 두 사람은 “그래도 우린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다시 한 번 투톱으로 뛰고 싶다”고 같은 바람을 말했다.“형이 상주로 오면 되겠네.” 동생의 부탁에 서동현은 살짝 고민하더니 “난 제주맨”이라며 웃었다. 24일 서귀포 한 식당에서 두 사람의 수다에 동참했다. □ 투톱의 재회- 서로 얼마만인가.서동현(이하 서) “지난해 12월에 다른 사람 결혼식 때 봤다. 서로 바빠 얘기는 잘 못했다.”하태균(이하 하) “수원에 있을 때 포지션이 같아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그 때 얘기를 많이 했는데, 난 형이 제주 가선 연락을 안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연락이 오더라. 맨날 서로 축구 얘기 한다.”서 “내가 2006년에 입단하고 태균이가 2007년에 드래프트 1순위로 수원에 왔다. 2007년에 태균이 오면서 밀렸다. 그러나 태균이가 다치면서 2008년에 다시 기회를 얻었다(웃음).”- 훈련소 생활은 어땠나.하 “군대에 가야 진짜 남자가 된다. 난 지난해 12월 10일에 들어와서 1월 20일에 나왔다. 그 사이 눈이 정말 많이 왔다. 이번에 또 화이트 크리스마스지 않았나. 남들은 좋아했지만, 아침 먹고 눈 쓸고, 점심 먹고 쓸고, 자기 전에 또 쓸고... 안 해 보면 모른다. 훈련소 원래 5주인데, 크리스마스에 신정까지 끼어서 7주 있었다.”화생방 얘기가 나왔을 때 하태균이 “저는 괜찮았습니다”라고 답하자 서동현이 “너 괜찮았‘습니다’ 라고 하냐”며 크게 웃었다. 하태균은 “말투가 아직 안 고쳐 진다. ‘요,죠’ 이런거 쓰면 안되니까. 처음엔 군대 갔을 때 아예 말을 안했다”며 쑥쓰러워 했다. 하 “형도 군대 와야 어른 된다.”서 “난 애기 아빠니까 이미 어른이다.” 서동현이 ‘복덩이’라 부르는 첫 딸 윤정이는 올해 4월이면 돌이 된다.□ 추억, 그리고 수다- 포지션 경쟁자인데, 서로 말 못할 사연이 많겠다.서 “태균이는 키는 같지만 나보다 체격이 좋다. 차 감독님께서 파워 있는 선수들을 좋아하니까 긴장을 많이 했다. 그래도 그땐 같이 새내기라 마냥 열심히 했다.” 하 “그 때 수원에 우리를 포함해 공격수가 9명이나 있었다. 안정환 형, (신)영록이, 나드손 등 쟁쟁한 선수들이 정말 많았다. 정환이 형은 무서워서 말은 못 걸었지만, 정말 열심히 한다는 걸 느꼈다. 팀 내 최고참인데 훈련 시간 전에 와서 운동을 했다. 그냥 되는 선수는 없구나 싶었다. 그래도 난 동현이 형이랑 가장 호흡이 잘 맞았고 결과도 좋았다. 요즘도 언젠가 한 팀에서 뛰자는 얘기를 한다.”-투톱으로 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서 “그 때 부산전....”하 “아 정말... 지금도 생각하기 싫다.”하 “2007년에 둘이 투톱으로 풀 타임을 뛰었다. 내가 어시스트를 해 형이 먼저 골을 넣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한테 찬스가 왔다. 가만히 놔두면 골인데, 동현이 형이 골대 가서 발을 갖다 대더라. 들어가기라도 했으면, 도움이라도 되는건데. 오프사이드가 돼다. 한 참 신인왕 경쟁 중이었는데 내 한 골을 형이 뺏어갔다.”서 “그때 1-0 이기다, 후반에 1-2로 역전당한 상황이었다. 내가 건드려 오프사이드가 됐지만 사실 난 골을 넣으려던 게 아니었다. 골키퍼 키를 넘겨 이미 골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동점됐다’고 기쁜 마음에 가서 골을 차고 나온 거다. 나중에 (백)지훈이 형이 골을 넣어 간신히 2-2 동점이 됐다. 그때 신문에 서동현 천당-지옥 왔다 갔다 했다고 났었다.”-이 사실을 하태균 선수도 알고 있었나.하 “몰랐다. 사실 그 때 형이 미웠다. 신인왕 경쟁 중이었는데.... 그래서 거기에 대해선 그 뒤로 한 마디도 안했다. 근데 아마 그 때 알았어도 기분이 안 풀렸을 거 같다.”서 “사실 나도 그때 말 하기가 멋쩍어 지금껏 아무 말도 안했다. 태균아 미안하다(웃음). 난 그때부터 팬들에게 엄청 욕먹기 시작했다.”- 혹시 기억에 남는 팬이 있나.서 “수원 팬들로부터 이적을 수십 번은 당했다(웃음).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전북 서포터스 한 분이다. 내가 전주로 경기를 갈 때마다 ‘너 아직 축구하냐’고 소리를 친다. 강원을 가고 제주를 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 번은 나도 욱 해서 ‘아직 응원하냐’고 소리칠 뻔 했다. 예전에 내가 전북전에서 어린이날 골을 넣고 들뜬 마음에 코너플래그가서 세리머니를 한 적 있는데, 그게 전북 서포터스 좌석 쪽이었다. 그래서 나를 미워하시는 건지....” 하 “난 경기장 들어가면 귀를 막는다. 그럼 욕하는 소리는 안 들리고, 여학생들이 이름 부르며 파이팅 해주는 소리만 들린다(웃음).” □ 투톱, 미래를 말하다-K리그는 외국인 공격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서 “매번 대표팀 뽑을 때마다 공격수가 없다고 하는데 리그에서 뛸 기회가 부족하지 않나. 기회가 주어줘도 금방 사라지기 일쑤다. 아무래도 기다려 주는 시간이 적다. 그런데 성적을 위해선 팀이나 감독님 입장에선 용병을 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니 우리가 적응해야 할 몫이다. 그래도 이런 위치 때문에 더 방심하지 않고 노력하게 되는 거 같다.”하 “처음부터 같이 경쟁하기 보다 용병에게 기회를 먼저, 더 주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성적을 위해선 내가 감독이라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또 우리가 주어지는 기회를 못 잡는 부분도 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올 시즌 목표는.서 “지난해 12골을 넣었다. 공격포인트는 15개 였는데, 수원에 있었던 2008년 기록과 똑같아. 올해는 넘어서고 싶다. 그리고 겨울에 시상식에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다. 시상식가면 부인이 입혀주는 대로 입고 갈 거다.”하 “상무 오기 전까지 고민 많았다. 경기엔 조금씩 나갔지만 수원에서 밀려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는 선수로서 발전할 수 없다고 느꼈다. 상무에 오면 다 놓고 마음 편하게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위 시선이나 부담도 적고, 아무래도 기회도 많이 주어질 테니까. 하루 빨리 경기 감각을 찾아서 그 동안 못 뛰었던 거 한 없이 뛰고 나올 생각이다.”서 “2부 리그 득점왕 해야지”하 “그럼 형이 와서 좀 도와주면 되겠네. 안 그래도 박항서 감독님도 형이 상무에 왔으면 하신다.”서 “하하. 난 제주맨이라고.”서귀포=손애성 기자 iveria@joongang.co.kr 2013.01.29 11:54
스포츠일반

정찬성 “평범한 나…가끔 격투기 선수인지 까먹는다”

1일 오전 11시 서울 대림동 코리안탑팀 체육관 앞. 빨간색 스쿠터를 탄 청년이 나타났다. 평범한 체격에 야구 모자를 눌러쓴 그는 한국인 최초 UFC 챔피언 도전자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청년같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뿐 아니라 동양인 중에서도 가장 세계 정상에 가까운 싸움꾼이다. 26세 청년 정찬성. 미국인의 심장을 훔친 ‘한국산 좀비’를 만났다. -스쿠터를 타고 다니나. 겉보기엔 그냥 동네 청년 같다. “가끔씩 심심하면 스쿠터를 타고 집 근처 뚝섬 고수부지도 돌아다닌다. 여름이라 사람들이 많은데도 한 명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지나가던 팀 동료 김두환 선수를 가리키며) 쟤처럼 외모도 좀 우락부락해야 사람들이 알아보는데, 난 정말 평범하지 않나. 요즘처럼 시합이 없을 때는 나 스스로도 내가 격투기 선수인지 가끔 까먹는다.(웃음)” -지금까지 UFC 챔피언에 도전한 동양인은 4명. 모두 일본인이다. 이들이 실패한 이유를 체격이나 기술이 아닌 근성과 적지의 불리함에서 찾았는데. “기술은 일본이 오히려 미국보다 좋다. 일본인들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너무 굽히고 들어가는 성향이 있다. 그런 문화가 격투기에서는 좋지 않다. 이 얘기는 일본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말했다. 한국이 일본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건 근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근성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인종적인 한계는 없나. 선천적인 파워가 서양인에 비해 부족하다던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인구가 5000만도 안 되지 않나. 그런데 UFC 선수는 벌써 3명이다. 적은 게 아니다. 선천적 파워를 운운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첫 경기 기억하나? 데뷔전이 2007년 6월, 딱 5년 전이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슈퍼 삼보 페스티벌이란 대회에서 이형걸이란 선수와 붙었다. 사실 이 선수와 주짓수 대회에서 두 번 만나서 다 졌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를 기억 못하더라. 원래 진 사람만 기억하지 않나. 결국 MMA에서 두 번 붙어서 다 이겨버렸다.” - 최근 알리스타 오브레임이 약물 검사에 걸려 UFC 헤비급 타이틀전이 취소됐다. 약물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해외 나가보면 외국 선수들이 약물을 한다는 소문을 많이 접한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 중에서는 약물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 나 역시 그렇다. 지금처럼 약물 검사를 느슨하게 하면 똑같은 노력을 하고도 우리만 불리하게 된다. 약물 검사를 더 확실하게 해야 한다. 나도 미국 경기를 많이 뛰어봤지만 이번에 메인이벤트 하면서 처음으로 약물 검사를 받았을 정도다. 더 자주, 엄격하게 해야 한다." -진주에서 초등학교 시절 ‘짱’이었다던데. “맞다. 그런데 나 혼자 짱이었던 건 아니고, 잘 싸우는 애들 몇 명이 있었다. 우리끼리는 서로 건드리지 않았다. 괜히 붙었다가 한 밑천 드러나면 쪽팔리지 않나. 한 번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과 딱지를 치며 놀고 있는데, 어떤 덩치 큰 녀석이 와서 이유 없이 뺐어가려고 하더라. 친구들도 많이 있는데 자존심 때문에 물러설 수가 없었다. 결국 흠씬 패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근처에 사는 중3이었다. 어릴 적에 진짜 많이 싸웠다. 초등학교 때만 20~30번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론 전승했다. 중학교 가선 덩치가 안 커져서 맞기도 했지만. 커서도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나는 모르는데 그쪽에서 나를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길가에 지나가다 보면 펀치 기계 있지 않나? 내가 (설문에서) 어깨에 자신 있다고 썼는데, 동네에 있는 펀치 기계 기록을 다 깨고 다녔다. 물론 지금은 팀 동료 (양)동이 형, (임)현규 형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웃음)" - 중학교 시절 덩치가 작아서 맞기도 했다던데, 덩치가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박치기다. 나보다 큰 상대 만나면 무조건 옷 부여잡고 들이받았다. 그럼 상대방이 코피가 난다. 어릴 적엔 코피 나면 지는 거 아닌가?(웃음)”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무얼 보나. “성격이다. 아무리 예뻐도. 까칠하면 거리를 둔다. 물론 나도 남자니까 예쁜 게 좋기는 하다. 하지만 너무 화려할 필요는 없고 뚱뚱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뚱뚱하면 자기 관리를 안 하는 것으로 보인다. 까칠한 것과 도도한 것은 다르다. 도도한 것은 예의와 매너를 갖추고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고 까칠한 것은 무조건 자기만 최고인 줄 아는 것이다. 도도한 건 좋다." -결혼은 언제 하고 싶나. “당장이라도 하고 싶다. 그래야 딴 짓 안하고 집중할 것 아닌가. 특별히 젊을 때 못 놀아서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은 안한다. 내 목표도 결국은 좋은 아내, 아들 딸 낳아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잘 눈에 띄지는 않더라. 내가 은근히 눈이 높은가보다.”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고, 연패를 하면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결국 UFC 챔피언 도전권을 따냈다.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나는 운좋게도 좋아하는 격투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은 해야 한다. 계속 하다 보면 꼭 그걸로 성공을 못하더라도 또 다른 쪽으로 일이 잘 풀린다. 그런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봤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다른 길도 열린다. 어차피 우리 세대는 100살까지 산다고 한다. 하고 싶은 걸 하자.”원호연 기자 bittersweet@joongang.co.kr 2012.06.0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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